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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KING ( 2024 ~ )

BRAKING  (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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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보다 빠르고 싶었다. 코를 뚫고 들어오는 휘발유 냄새와 찢어지는 타이어 스키드음, 대화가불가능 할 정도의 엔진 소리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서 나의 유년시절은 결승선을 가장 빨리 통과한 단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존재했다.

 

오랜만에 서킷으로 돌아갔을 때, 나에게 서킷은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곳처럼 느껴졌다. 늘 주인공으로써 중심부에 머물던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현재의 나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중심부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간이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중심부에 머무르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서킷이라는 공간에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는데, 철저히 외부인 / 혹은 일반 관람객이 되기에도 애매한 지점이 있고, 그렇다고 중심부에 머무르기에도 애매한 지점이 있는 그 모호한 경계 속에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주변부 혹은 경계속에 존재하게 되자, 주변을 구성하는 사물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늘 레이스의 앞면만을 보고 지내왔던 나는 처음으로 레이스의 이면에서 존재하는 사물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이렇게 마주한 사물들은 분명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레이스라는 큰 맥락속에서 나와 함께 숨쉬어 온 것들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의 나에게 이 사물들은 너무도 생경한 감각을 내뿜으며 저마다의 정서를 어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저 감도, 조리개를 조이고, 셔터스피드는 점차 느려진다. 레이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이 극도로 빠른 호흡 속에서 이루어지는 서킷이라는 공간에서 가능한 가장 느린 호흡으로 이 사물을 마주하고자 했다.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는 욕망을 접고, 현재의 나와 이 사물이 마주하며 생겨나는 그 사이 공간에서의 중력과 공기를 감각하려고 하자 그제서야 셔터를 한장 한장 눌러갈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사진 이미지로 포획한 이 정지된 사물들은 각각의 단면일 뿐 전체의 이야기로 대변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가 아닌 단면과 단면들이 모임으로서 그제서야 단순히 레이싱, 혹은 서킷이라는 틀을 넘어설 수 있기도 했다. 이미지가 쌓여가면 쌓여갈 수록 작업 속 일련의 이미지는 결국 레이싱에 대한 것이 아닌 나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호한 경계속에 머무르며 혼란을 겪고 있는 나 자신과, 나의 시선들, 그리고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주변부의 사물들이 내뿜는 생경한 감각이 서로 엮이고 새로운 감각의 이야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copyright © 2025 by Woosun 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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